[이코노믹리뷰=전지현·김자영 기자] 외국인 관광객 '2000만 시대'를 기대했던 국내 호텔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한때 관광호텔부터 비즈니스 호텔까지 난립하며 호황을 누렸던 국내 호텔시장은 '블랙스완(Black Swan,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사건이 실제 발생하는 것)' 위기에 맥없이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매물로 나왔거나 새 주인을 찾은 서울 특급 호텔만 7~8곳.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국내 호텔업계는 거센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우후죽순 생겨난 관광호텔, 방문객 줄자 '보릿고개'

르메르디앙(옛 리츠칼튼, 강남구),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서초구), 머큐어 앰배서더(홍대), 쉐라톤디큐브씨티호텔(신도림), 크라운관광호텔(이태원). 이들의 공통점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매각이 결정된 5성급 호텔이란 점이다. 현재 매각설이 나오는 특급호텔과 중저가 호텔까지 더하면 그 숫자는 두자릿수를 넘어선다.

국내 숙박시장은 지난 2012년 7월 '관광숙박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이 시행되면서부터 전환점을 맞았다. 지난 2009년부터 외국인 관광객은 지속 증가하는데 비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 관광숙박시설 수요가 공급량이 따르지 못하자 정부는 이 시행령을 통해 ▲호텔 용적률 인상 ▲건축 허가 등 인허가 일괄 처리 ▲주차장 설치기준 완화 등 호텔부족 문제 해소에 나선다.

실제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숫자는 사상 처음으로 600만명에 달했다. 3년새 중저가 호텔은 공급과잉을 우려할 정도로 우후죽순 생겼다. 특 1급 호텔을 운영하는 대기업들이 '비즈니스호텔(사업차 장기 투숙이 필요한 샐러리맨 등을 위해 저렴한 경비로 출장 온 비즈니스맨들이 쉽게 업무를 보고 장기 투숙하기 편리하도록 만든 중저가호텔)' 시장에 뛰어든 것도 이 때다.


당시만해도 국내에서 생소했던 '비즈니스호텔'은 신라호텔이 2013년 11월 신라스테이 동탄을 시작으로 역삼, 제주, 서대문 등 총 4곳을, 롯데호텔은 마포, 김포, 제주, 대전, 구로, 울산까지 총 6곳,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 2곳을 운영 중인 GS계열 파르나스는 2012년 12월 명동역 뒤쪽에 나인트리호텔 명동을 개관했고, 신세계조선호텔은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서울 남산으로 비즈니스호텔 시장에 발을 들였다. 여기에 외국계 브랜드로는 프랑스 아코르계열 비지니스호텔 브랜드인 이비스는 강남, 명동 2(스타일앰버서더), 신사동, 동대문(버젯 앰버서더), 수원, 부산 2 등 총 8곳 등도 문을 열였다.

그로부터 약 8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호텔업계는 과밀현상에 빠진다. 문화관광체육부의 '관광숙박업 등록현황'에 따르면 2012년 786개(8만2209실)였던 호텔은 지난해 말 기준 2,064개(16만2709실)까지 3배 가량 늘었다. 특히 서울지역 호텔수는 2012년 161개(2만7,156)에서 463개(6만939실)로 증가했다.

중소형 호텔 폐업도 가시화...호텔 '잔혹사'

그러나 서울 지역 관광호텔(욕실이나 샤워시설 갖춘 객실 30실 이상)수는 지난해 관련 통계작성이 시작된 2008년 이래 처음으로 2개 줄었다. 서울 관광호텔(연말 기준)은 2008년 125개에서 2019년 333개로 꾸준히 증가했었다. 구체적으로는 지난해 5성급 관광호텔 1곳을 비롯해 4성급 6개, 3성급 14개, 2성급 7개가 감소했다. 반면 1성급은 변화가 없었고, 등급이 없는 관광호텔은 26개 늘었다.

지난해 코로나19 영향에 수익성이 크게 무너진 영향이다. 한국호텔업협회의 '전국 5대 권역 호텔업 현황'에 따르면 올해 1~4월 국내 호텔 객실 판매율은 45.1%로, 2019년 연간 평균 71%에 비해 하락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100개 객실 중 71실이 찼으나 올해 45.1곳만 고객을 맞았다는 이야기다.


하늘길이 막히면서 외국인 방문이 줄어든 탓이 컸다. 호텔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 이전 호텔 수요 60%는 외국인이었다.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외국인들 유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의미"라며 "호텔 업계는 수도권 중심이기 때문에 서울내 호텔은 코로나 영향이 클 수 밖에 없다. 호캉스 수요가 늘고 있다하더라도 여전히 주중 공실률이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19년 1,750만명에 달했던 방한 외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252만명으로 급감했다. 올해 5월까지 고작 34만명이 방한한 것을 감안하면, 연말까지 누적방문객수는 50만명을 넘지 못할 것으로 추산된다.

호텔→주거시설로 탈바꿈중...色 갖춘 차별화가 생존비결

상황이 이렇다보니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고 매각을 결정하는 사례가 늘었다. 특히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형 운영사들이 매각대열에 합류하는 모양새다. 눈에 띄는 점은 최근 서울 시내에서 매각된 크고 작은 호텔 대부분은 고급 주거시설이나 오피스텔 등 주거시설로 탈바꿈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물로 나온 서울 호텔에 눈독들인 곳들이 대부분 부동산디벨로퍼, 자산운용사, 투자은행, 건설사, 외국계 투자회사 등이기 때문이다. 르메르디앙 호텔과 쉐라톤팔래스 등은 최고급 주거용 오피스텔 변신이 확정됐고, 크라운호텔도 한남동을 주변을 활용한 고급 빌라 건립이 예상되고 있다.


호텔 주변 부지를 매각하는 곳도 있다. 한남동 노른자에 위치한 서울 남산 그랜드하얏트서울호텔은 8,595㎡(2600평)에 달하는 초고급 주거용 부지를 매각키로 했다. 호텔 특성상 시내 중심에 모여 있는 만큼 접근성이 좋고 조망 등 주거시설 개발에 우수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탈호텔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문제는 올해 전체 서울 호텔 중 많게는 절반가량이 매물로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호텔들은 파격적인 객실 할인 및 직원 휴직 등을 통해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장기화되는 코로나19 상황에 영업손실 규모마저 늘어나는 실정이다.

한국호텔업협회 한 관계자는 "현재 (매물로 나온 곳들은) 1~2년 적자를 이유로 매각하는 것이 아닌 이미 몇년전부터 수익률이 낮아 매각 이야기가 나오는 곳들이었다"라면서도 "여기에 외국인이 방문이 줄면서 매출 회복 속도가 느려졌다. 앞으로가 더 심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로나19 종식 후가 문제란 지적도 나온다. 한중관계가 정상화와 서울 방문 수요가 증가할 경우 호텔객실 부족난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호텔이 생존을 하려면,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고재윤 경희사이버대학교 호텔 레스토랑 경영학과 교수는 "앞으로 호텔은 분명한 색깔이 있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것으로 전망되기에 호텔마다 색을 가지고 어필해야 한다"며 "호텔에서 식사먹고 잠을 자기보다 SNS에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을 선호하는 젊은 층 수요도 늘었다. 앞으로는 시설 고급화 등 차별화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